의정부 부대찌개의 역사와 부대찌개거리,
그리고 이 도시에서 16년을 살며 조금씩 알게 된 ‘의정부의 맛’
2009년 의정부로 이사를 왔다.
이사하기 된 배경과 의정부를 선택한 이유를 구구절절히 설명할 순 없지만
포천에 모신 할아버지, 할머니 묘소가 있어 1년에 몇 번은 반드시 거쳐지나는 의정부는 내게 있어 익숙하지만 친숙하지는 않은 그런 곳이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 한국사람들은 의례 통성명 후 호구조사에 들어간다.
그 첫번째 질문의 9할은 "어디사세요?"이고, "의정부에 삽니다."라고 얘기하면 갑자기 낯빛이 바뀌는 걸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아직 편한 사이가 아니면 "그 먼 곳에서 어떻게 출퇴근 하세요?"로 질문을 잇고,
조금 편한 사이면 "그렇게 먼 곳 같으면 나는 이 회사 때려친다."로 추가 질문을 삼가한다.
그들의 질문에 늘 "의정부가 먼 곳이 아니라, 회사가 먼 거에요."라고 난 응수를 하면서도 우리 동네 의정부가 서울을 둘러싼 그 수많은 경기 지역에서도 여전히 좋지 못한 이미지를 갖고 있음에 씁쓸한 뒷맛을 느꼈다.
태어나 처음으로 내가 선택하여 뿌리 내린 이곳 의정부의 시민으로써,
나의 사랑스런 아이들이 나고 자란 의정부를 좀 더 애정있는 마음으로 보기 위해 의정붜 다큐를 시작한다.
뉴욕에 사는 사람을 뉴요커라하고 파리에 거주하는 이들을 파리지엥으로 부르듯
나는 이제 나와 같은 의정부 시민들을 의정붜(UijeongBuer)라 부르기로 했다.
아마 의정부에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사람에게 “의정부 하면 뭐가 떠오르느냐”고 물으면 비슷한 대답이 돌아올 것이다.
“의정부? 부대찌개 유명한 데 아니야?”
맞다.
그런데 의정부에서 살아본 시간이 길어지면서 이 익숙한 문장이 조금 다르게 들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부대찌개가 유명한 도시’라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오히려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왜 수많은 음식 가운데 부대찌개가 의정부라는 도시의 이름처럼 남았을까.
그리고 더 궁금한 것이 생겼다.
전국 어디에서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인데 왜 사람들은 굳이 ‘의정부 부대찌개’라고 부를까.
그 답을 찾아가다 보면 음식 이야기만으로는 끝나지 않는다.
한국전쟁이 나오고, 미군부대가 나오고, 의정부 구도심과 시장이 나오고, 그곳에서 장사하며 가족을 먹여 살렸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부대찌개 한 그릇을 따라가다 보니 결국 의정부라는 도시의 현대사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먼저 알아두면 좋은 의정부 부대찌개 5가지
| 탄생 배경 | 한국전쟁 이후 의정부에 주둔한 미군부대 주변 |
| 주요 재료 | 햄·소시지·베이컨 + 김치·고추장·채소·떡 |
| 형성 시기 | 1950년대 이후 등장, 1960년대 의정부제일시장 주변 식당 증가 |
| 대표 공간 | 의정부중앙역 인근 의정부 부대찌개거리 |
| 현재 의미 | 향토음식 → 음식특화거리 → 축제·관광자원 → 의정부 도시 브랜드 |
의정부시는 공식적으로 먹을 것이 귀했던 시절 미군부대에서 유입된 햄·소시지·베이컨에 김치와 고추장, 떡과 채소를 넣어 얼큰하게 끓여 먹은 것을 의정부 부대찌개의 유래로 설명한다. 한국관광공사 역시 한국전쟁 이후 의정부에 대규모 미군부대가 들어서고 1960년대부터 의정부제일시장 주변으로 관련 식당들이 생겨나면서 부대찌개 골목이 형성된 것으로 소개한다.
부대찌개는 처음부터 ‘의정부 명물’이 아니었다
지금 우리는 부대찌개를 꽤 즐거운 음식으로 기억한다.
가족끼리 외식하기 좋고, 여럿이 둘러앉아 먹기 좋고, 라면사리를 넣으면 아이들도 좋아한다.
하지만 출발은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았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 우리나라에는 먹을 것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특히 미군이 대규모로 주둔했던 의정부에서는 부대 주변을 통해 햄과 소시지 같은 당시로서는 낯선 서양 식재료를 접할 수 있었다.
지금이야 마트에 가면 몇 천 원이면 살 수 있는 햄이지만 당시에는 이야기가 달랐다.
미군부대에서 나온 햄과 소시지를 사람들은 ‘부대고기’라고 부르기도 했다. 한국관광공사는 이 부대고기에 김치와 채소, 고추장 양념을 더해 끓인 것이 부대찌개로 발전했다고 설명한다.
낯선 서양 음식은 그렇게 한국인의 방식으로 바뀌었다.
햄이 조금 느끼하다?
→ 김치를 넣는다. 그래도 느끼하다? → 고추장을 넣는다. 양이 부족하다? → 채소와 떡을 넣는다. →
그리고 끓인다.
오늘날이라면 ‘퓨전 퀴진’이라는 멋진 이름을 붙였을지 모르지만, 그 시대 사람들에게는 훨씬 현실적인 문제였다.
있는 것을 가지고 맛있게 먹어야 했다.
이것이 부대찌개의 출발점이었다.


그런데 왜 ‘의정부’ 부대찌개일까
여기서 자연스럽게 한 가지 질문이 생긴다.
미군부대가 의정부에만 있었던 것도 아닌데 왜 하필 의정부일까.
송탄에도 유명한 부대찌개가 있고, 동두천 역시 미군 주둔의 역사가 깊다.
그럼에도 ‘의정부 부대찌개’라는 이름이 강력하게 자리 잡은 데에는 도시의 환경이 영향을 미쳤다.
한국전쟁 이후 의정부에는 대규모 미군부대가 밀집했고, 미군부대 주변에는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였다.
사람이 모이면 상권이 생긴다.
시장이 만들어지고 식당이 생기고 술집과 숙박시설이 생긴다.
한국관광공사 자료에 따르면 1960년대부터 의정부제일시장 주변에 부대찌개 식당들이 하나둘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부대찌개의 발전 과정을 음식만 놓고 보면 반쪽짜리 설명이다.
실제로는 이런 흐름에 가깝다.
한국전쟁
→ 미군부대의 의정부 주둔
→ 햄·소시지 등 새로운 식재료 유입
→ 시장과 주변 상권 형성
→ 한국식 조리법과 결합
→ 전문 식당 등장
→ 부대찌개 골목 형성
→ 의정부 대표 음식으로 정착
음식이 도시를 만든 것이 아니라, 도시의 변화가 음식을 만들었다.
의정부 부대찌개의 ‘원조’ 이야기는 생각보다 조금 복잡하다
의정부 부대찌개의 역사를 검색하면 거의 반드시 등장하는 이름이 있다.
오뎅식당.
한국관광공사는 오뎅식당을 의정부에서 최초로 부대찌개를 만들어 판매한 식당으로 소개한다. 1960년 작은 어묵 포장마차에서 시작해 미군부대 식재료와 김치를 이용한 메뉴가 인기를 얻으면서 부대찌개 전문점으로 발전했다는 설명이다. 지금은 3대째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이 하나 있다.
의정부시의 다른 공식 소개 자료에는 초기 메뉴가 지금과 같은 부대찌개가 아니라 햄볶음이었으며 이후 국물이 있는 찌개 형태로 발전했다고 설명되어 있다. 해당 자료에는 1988년부터 찌개로 전환했다는 기록도 나온다.
즉, ‘1960년에 지금 우리가 아는 형태의 부대찌개가 완성됐다’고 단순하게 말하기에는 자료마다 설명에 차이가 있다.
오히려 이 차이가 흥미롭다.
처음부터 완성된 레시피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햄과 소시지를 볶아 먹던 음식 → 김치와 양념을 더한 음식 → 국물을 더한 찌개
처럼 오랜 시간에 걸쳐 발전했을 가능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다음 에피소드에서 조금 더 깊게 파볼 예정이다.
맛집 골목인 줄 알았는데, 오래된 의정부가 있었다
의정부경전철 의정부중앙역 2번 출구에서 조금 걸으면 의정부 부대찌개거리가 나온다.
현재 의정부시와 한국관광공사는 이곳을 옛 양주군청 주변에 부대찌개 전문점들이 모여 형성된 음식특화거리이자 관광테마골목으로 소개하고 있다.
현재 공식적으로 소개되는 전문점은 12곳이다.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는 나 역시 ‘유명한 부대찌개집이 몰려 있는 곳’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곳에서 오래 생활하고 주변을 걷다 보면 조금 다른 것이 보인다.
멀지 않은 곳에 의정부제일시장이 있고,
(※ 의정부제일시장도 나름의 맛과 멋이 넘치는 곳이다.)
행복로가 있고,
의정부역이 있다.
오래된 상가 뒤로 새 아파트와 높은 건물이 보인다.
옛 의정부와 새로운 의정부가 한 화면에 겹쳐진다.
그래서 부대찌개거리를 단순한 먹자골목이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아쉽다.
이곳은 의정부 구도심의 변화를 오래 지켜본 생활의 공간이기도 하다.
관광객에게 부대찌개와 주민에게 부대찌개는 조금 다르다
지역 대표음식을 바라보는 방식에는 묘한 차이가 있다.
외지인은 음식을 찾아서 먹는다.
주민은 음식이 생각나서 먹는다.
관광객이 의정부에 오면 검색창에 이렇게 입력한다.
의정부 부대찌개 맛집
그리고 리뷰와 별점, 방송 출연 여부를 본다.
주민끼리의 대화는 훨씬 간단하다.
“부대찌개 먹을까?”
“어디?”
“거기.”
대략 끝난다.
문제는 이 ‘거기’가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부대찌개거리의 오랜 식당이고,
누군가에게는 가능동의 단골집이고,
호원동이나 신곡동에서 오래 살았다면 자기 생활권 안에 따로 좋아하는 집이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의정부에는 부대찌개만 있는 것도 아니다.
1973년 문을 연 것으로 소개되는 정통부대고기처럼 국물을 자작하게 줄여 볶아 먹는 부대볶음을 즐기는 문화도 존재한다. 한국관광공사는 이곳의 부대볶음을 별도의 대표메뉴로 소개하고 있다.
이런 음식은 관광객의 검색 결과보다 주민의 생활 속에서 더 오래 살아남는다.
그래서 이번 연재에서는 유명한 집만 찾아다니지 않을 생각이다.
부대찌개거리도 가고,
방송에 나온 집도 가고,
의정부 사람들이 동네에서 오래 찾는 집도 가볼 예정이다.
말하자면 ‘검색되는 의정부’와 ‘살아보면 알게 되는 의정부’를 함께 보는 것이다.
부대찌개에는 의정부의 아픈 역사가 세겨있다
부대찌개의 역사를 낭만적으로만 설명해서도 안 된다.
그 배경에는 전쟁이 있었다.
가난이 있었고,
먹을 것이 부족했던 시대가 있었다.
미군기지를 중심으로 형성된 의정부의 도시 구조도 있었다.
그래서 한국관광공사는 부대찌개를 소개하면서 ‘삶의 애환이 깃든 찌개 한 그릇’이라고 표현한다.
허영만의 『식객』에서도 의정부 부대찌개는 단순한 맛집 음식이 아니라 전쟁 이후의 기억과 연결된 음식으로 다뤄졌다. 해당 에피소드는 이후 방송을 통해서도 알려졌다.
이 점이 다른 지역 명물과 조금 다르다.
부대찌개는 오래된 궁중음식도 아니고,
지역 특산물을 이용해 만든 전통 향토음식도 아니다.
전쟁 이후의 결핍과 외국문화의 유입, 그리고 그것을 자기 방식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의 생활에서 탄생한 음식이다.
어쩌면 그래서 더 의정부답다.
그런데 그 아픈 음식이 이제는 축제가 되었다
시간은 음식의 의미도 바꿔놓았다.
먹고살기 어려웠던 시절의 음식은
서민의 외식 메뉴가 되었고,
지역의 명물이 되었으며,
이제는 도시의 관광 콘텐츠가 됐다.
2026년 의정부시는 제19회 의정부부대찌개축제를 10월 24~25일 부대찌개거리에서 개최할 계획이다. 공연과 무료 시식회, 상권 활성화 이벤트 등이 예정돼 있다. 일정은 향후 변경될 수 있다.
또 의정부시는 2024년 부대찌개거리뿐 아니라 주변 관광지까지 묶은 ‘먹찍구(먹고·찍고·구경하고) 스탬프투어’를 운영하기도 했다.
이 변화가 꽤 상징적이다.
과거에는 도시의 군사적 환경 때문에 생겨난 음식이었다.
지금은 오히려 그 음식이 사람을 의정부로 불러들이고 있다.
군사도시의 부산물이 도시의 문화자산으로 바뀐 것이다.
나는 언제부터 부대찌개를 조금 다르게 보기 시작했을까
나는 의정부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2009년에 이곳으로 왔다.
처음에는 의정부를 외부인이 도시를 평가하는 방식으로 봤다.
서울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교통은 편한지,
집값은 어떤지,
생활하기는 괜찮은지.
아주 현실적인 기준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도시를 보는 기준이 달라졌다.
어느 길이 막히는지 알고,
어디에서 장을 보면 좋은지 알고,
동네별 분위기의 차이를 알고,
예전에 있던 가게가 사라지면 조금 아쉬워진다.
그렇게 도시가 ‘지역’에서 ‘생활’로 바뀐다.
부대찌개 역시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의정부의 유명한 음식이었다.
그러다 부대찌개거리를 알고,
그곳의 역사를 알고,
이 음식이 왜 여기에서 생겼는지 알게 됐다.
그러자 어느 순간 맛보다 사람과 시간이 먼저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의정부=부대찌개’라는 말이 이제는 조금 다르게 들린다
예전에는
“의정부? 거기 부대찌개 유명하지.”
라는 말을 들으면 그냥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한마디 정도 더 붙이고 싶어진다.
“맞아. 그런데 왜 유명한지 알고 먹으면 조금 달라.”
햄과 김치가 만나서 맛있다는 이야기만은 아니다.
그 뒤에는 한국전쟁 이후의 의정부가 있고,
미군부대가 있고,
제일시장과 구도심이 있고,
그곳에서 수십 년 동안 장사를 이어온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지금 그 자리에 살아가는 새로운 세대가 있다.
그래서 부대찌개는 의정부에서 유명한 음식이라기보다,
의정부라는 도시의 시간을 가장 쉽게 맛볼 수 있는 음식에 가깝다.
의정붜 다큐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EP.02에서는
의정부 부대찌개 유래를 본격적으로 파고들 것이다.
미군부대의 햄과 소시지는 어떤 경로로 지역에 들어왔는지, 초기의 부대고기와 햄볶음이 어떻게 오늘날의 부대찌개로 발전했는지 살펴본다.
이후에는
부대찌개거리의 역사,
방송과 유명인들이 찾은 의정부 부대찌개,
의정부 사람들이 실제로 찾는 숨은 맛집,
부대볶음,
부대찌개축제,
그리고 부대찌개 먹고 함께 걸어볼 의정부까지 찾아갈 예정이다.
처음에는 나 역시 의정부를 ‘부대찌개로 유명한 도시’로 알았다.
살다 보니 반대였다.
부대찌개를 알아갈수록 의정부라는 도시가 조금 더 보였다.
다음 편
EP.02 의정부 부대찌개 유래, 미군부대의 햄은 어떻게 김치와 만났을까
1960년 오뎅식당의 시작, ‘부대고기’라는 이름, 햄볶음에서 찌개로의 변화.
그런데 자료를 찾아보니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원조 부대찌개 이야기’에도 조금씩 다른 기록이 존재한다.
다음 편에서는 바로 그 지점부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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