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 골목에서 태어난 부대찌개는 서울에 도착해 조금씩 다른 얼굴을 갖기 시작했다. 이태원에서는 치즈를 만났고, 여의도에서는 직장인의 점심이 됐다.
EP.01부터 EP.05까지는 의정부를 중심으로 부대찌개에 대한 역사와 사연을 들여다봤다.
그런데, 부대찌개는 의정부만의 전유물이 아닐 뿐더러 이제는 한국을 넘어 해외 다양한 국가에 밀키트로 수출된다.
최근에는 해외 관광객과 외국인에게 소개되는 한국의 대표 음식으로서 인지도를 높여가고 있다.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한국인이 사랑하는 전국구 음식, 부대찌개의 변천사를 다룬다.
이제 부대찌개는 전국 어디서나 먹는다.
서울 한복판에도 있고, 부산에도 있고, 제주에도 있다. 휴게소에서도 만나고, 대형마트에는 밀키트가 있으며, 배달앱에서 검색하면 어느 동네든 몇 곳쯤은 나온다.
한국관광공사 역시 부대찌개를 이제 전국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찌개 가운데 하나로 설명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가장 먼저 연결되는 지역은 의정부다.
의정부를 대표하는 지역음식은 어떻게 전국구 음식이 되었을까.
먼저, 1호선을 타고 남쪽, 서울로 내려가 보자.
먼저 하나는 분명히 해 둘 것은
서울 부대찌개가 모두 의정부에서 ‘전파’된 것은 아니다.
이 글의 제목은 ‘서울 부대찌개의 역사’이나 그렇다고 해서 의정부 부대찌개의 조리법이 어느 날 경원선을 타고 서울로 내려가 서울의 모든 부대찌개집을 만들었다는 뜻은 아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는 분명 부대찌개의 주요 발생지를 1960년대 의정부로 설명하고 있지만, 한국전쟁 이후 미군이 주둔했던 다른 지역에서도 햄과 소시지를 이용한 비슷한 음식문화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울에도 거대한 미군기지가 있었으니, 바로 '용산'이다.
한국전쟁 이후 용산기지는 주한미군과 미8군의 핵심 공간으로 재구축됐다. 서울시는 용산 미군기지가 1960년대 상설 주둔 공간으로 자리 잡았고 주변의 이태원·한남동 등과 다양한 생활·상업적 관계를 만들어갔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니까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렇다.
의정부에서 대표적인 형태를 갖춘 부대찌개 문화와, 서울 용산 미군기지 주변에서 형성된 음식문화가 서로 다른 도시 환경에서 성장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이 음식들이 방송과 외식문화를 통해 서로 만나고, 섞이고, 다시 전국으로 퍼져갔다.
이번 편의 진짜 이야기는 이렇게 풀어가겠다.
의정부와 서울은 생각보다 오래 연결돼 있었다
의정부와 서울을 지금의 거리감으로만 생각하면 조금 곤란하다.
의정부역과 용산역은 이미 1911년 경원선으로 연결됐다.
의정부는 서울 북쪽의 군사·교통 거점이었고, 용산은 서울 내부의 거대한 군사 거점이었다.
한국전쟁 이후 두 지역에는 공통점이 생겼다.
미군이 있었다.
미군을 상대하거나 기지 안에서 일하는 한국 사람들이 있었고,
미군용 물자가 있었고,
기지 담장 밖에는 자연스럽게 음식점과 상점이 생겼다.
의정부에서는 그 풍경이 부대고기와 부대찌개거리로 이어졌고,
서울에서는 용산과 이태원을 중심으로 또 다른 음식문화가 만들어진 거다.


서울역사편찬원은 용산 미군기지 주변을 민간과 군의 생활공간이 교차했던 지역으로 별도 연구할 정도로 미군 주둔이 주변 도시공간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한다.
재밌는 건 의정부와 꽤 닮은 상황에 같은 식재료를 받아드렸음에도 조금은 다른 음식을 만들어냈다는 거다.
의정부에서 서울로 넘어오자 이름부터 달라졌다
‘부대찌개’가 아니라 ‘존슨탕’
이태원에 가면 꽤 독특한 부대찌개를 만날 수 있다.
이름부터 다르다.
존슨탕.
부대찌개의 다른 이름 가운데 하나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도 기록돼 있다.
대표적인 곳이 이태원의 바다식당이다.
식당 이름이 바다식당이라 하여 무슨 해산물이나 횟집 같아 보이지만,
이 식당의 메뉴에는 해산물이 단 하나도 없다.
대표 메뉴로 존슨탕이 있고, 소갈비/돼지갈비 바베큐, 소고기쏘세지(소세지가 아니라, 쏘세지다.), T본스테이크(쌩뚱맞지만) 등이 있다. 여기 T본스테이크는 이후 여의도로 넘어가 T본스테이크 부대볶음으로 변신을 하게된다.
일반 부대찌개은 가스레인지 불 위에 올려놓고 계속 끓여가며 육수나 햄, 소세지, 라면 사리 등을 추가해서 먹을 수 있지만, 존슨탕은 한 번 서빙되어 나오면 뭘 더 첨가하거나 추가해서 먹을 수 없다.
이곳에 처음 방문하면 대개 이런 점에서 한 번 놀랄 수 있다.
초기 바다식당의 타깃층이 한국인이 아니었을 것으로 쉽게 추정해 볼 수 있는 건, 이 식당의 메뉴 구성 뿐아니라 존슨탕을 한 입 떠 먹어보면 대번 알 수 있다. 일단, 비주얼은 부대찌개 사촌 쯤으로 보이는데 김치 대신 양배추가 들어있고, 햄과 소시지 비중은 좀 더 높은 편이다. 덜 맵고, 더 고소하다.
요즘 의정부 부대찌개에는 치즈를 얹혀나오는 곳이 있는데, 어쩌면 바다식당의 영향을 받았을런지 모른다.
개인적으로는 김치찌개든, 부대찌개든 얼큰한 맛으로 먹는 찌개나 탕에 치즈를 얹혀 먹는 건, 비호다.
같은 미군 가공육을 출발점으로 삼았는데,
의정부는 김치찌개의 문법으로 끌고 갔고, 이태원에서는 조금 더 서양식 스튜의 문법에 가까워진 셈이다.
음식이 지역을 만나면, 지역색을 띄기 마련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존슨탕'일까
나도 처음 지인들과 바다식당을 향하며,
"하필이면 왜 존슨탕래?"라고 물었던 적이 있다.
미국 대통령 린든 B. 존슨이 1966년 우리나라를 방문했는데 그 당시 분위기와 미국식 문화를 상징하여 그의 이름이 붙였다는 얘기가 많이 들린다. 그러나, 어디에도 공식적인 기록은 없으니 그 작명 과정은 어디까지나 전설의 고향이다.
서울에서 부대찌개는 ‘기지촌 음식’이라는 옷을 벗기 시작했다
이태원이 여전히 미군기지의 역사와 가까운 음식이라면,
조금 시간이 지나 서울의 다른 지역으로 가면 중요한 변화가 보인다.
부대찌개가 미군기지와 상관없는 동네에서도 팔리기 시작한다.
대표적인 곳이 여의도다.
여의도에는 미군기지가 없다.
대신 방송국이 있었고,
증권사가 있었고,
회사원이 많았다.
그곳에서 부대찌개는 완전히 다른 역할을 맡는다.
직장인의 점심이다.
대표적인 식당 가운데 하나가 희정식당이다.
1988년 문을 연 희정식당은 여의도 직장인들이 오랫동안 찾은 부대찌개집으로 알려져 있다. 「수요미식회」에서도 소개됐으며, 부대찌개에 마늘을 많이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나또한 여의도에서 근무할 때 동료들과 참 여러번 찾았던 곳이고, 나름의 추억이 깃든 곳이다.
희정식당에는 부대찌개보다 더 유명한 음식이 있는데, 'T본모듬스테이크'라는 음식이다.
일단, 처음 T본모듬스테이크를 주문하면 몇 번 놀랄 수 있는데,
첫번째, 분명히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음식일 거다.
두번째, 그 음식이 T본스테이크였다고 알 수 있는 건 볶음 음식 위에 올려 있는 T본(말 그대로 T자 모양의 뼈)을 봐야 알 수 있고, 이는 종업원이 "원래 이 뼈에 붙어 있는 고기를 다 잘라 나왔어요."라고 얘기해 주기 전까진 알 수 없다.
세번째, 특별한 맛은 기대하기 어렵다. 어느 정도 맛에 길들여질 때까지 들락거리면서 여의도의 풍경과 정취에 익숙해져야 비로소 이 음식의 맛과 멋을 알게 된다.


1960년대 의정부의 부대찌개가
“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식재료를 어떻게 먹을 것인가”
라는 질문에서 시작했다면,
1980~90년대 서울의 부대찌개는 이미 그런 설명이 필요 없는 음식이 됐다.
손님에게 햄이 어디서 왔는지 설명할 필요도 없다.
그저
빠르게 나오고,
여럿이 먹기 좋고,
국물에 밥을 먹을 수 있고,
라면까지 넣으면 든든하다.
부대찌개가 역사의 음식에서 일상의 음식으로 넘어가는 장면이다.
사실 부대찌개는 서울이라는 도시와 궁합이 꽤 좋다
왜였을까.
조금 생각해보면 부대찌개는 도시인의 식사로 상당히 영리한 음식이다.
부대찌개의 특징도시 생활과의 궁합
| 한 그릇을 여러 명이 함께 먹음 | 직장 동료·회식에 적합 |
| 햄·소시지·고기 | 포만감이 높음 |
| 김치와 얼큰한 국물 | 밥과 잘 맞음 |
| 라면·떡·당면 사리 | 인원·취향에 맞게 확장 가능 |
| 즉석에서 끓여 먹음 | 식사가 하나의 공동 경험이 됨 |
| 비교적 익숙한 재료 | 남녀노소 접근성이 높음 |
특히 사리 문화가 재미있다.
라면을 넣는다.
떡을 추가한다.
햄을 더 넣는다.
모자라면 밥을 볶거나 국물에 말아 먹는다.
이 음식은 처음부터 완제품처럼 정해져 있지 않다.
먹는 사람들이 조금씩 완성한다.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 서로 다른 취향을 가진 여러 사람이 한 테이블에 앉아 먹기에 꽤 유리하다.
한마디로 말하면,
부대찌개는 단체생활에 강하다.
회사 점심 메뉴로 살아남은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의정부 부대찌개’에서 그냥 ‘부대찌개’가 되는 순간
지역음식이 전국 음식이 되려면 재미있는 일이 하나 벌어진다.
지명이 떨어져 나간다.
안동에서 먹으면 안동찜닭이지만 서울에서도 우리는 대개 안동찜닭이라고 부른다.
춘천닭갈비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부대찌개는 서울에 나오면서 굳이
‘의정부 부대찌개’
라고 적지 않는 식당이 훨씬 많아졌다.
그냥
부대찌개.
이건 음식이 하나의 장르가 됐다는 뜻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부대찌개가 전후 궁핍 속에서 탄생했지만 현재는 한국인이 즐기는 인기 메뉴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고 평가한다.
음식이 고향을 떠난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고향을 떠났는데도 출생지는 잊히지 않았다는 점이다.
전국 어디에서나 먹는데,
누군가
“부대찌개 어디가 유명하지?”
라고 물으면 여전히 의정부가 나온다.
자식은 독립했는데 본적은 남아 있는 셈이다.
서울에서 부대찌개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갈래로 자랐다
서울에 들어온 부대찌개는 의정부식 한 가지 형태로 통일되지 않았다.
오히려 서울이라는 큰 도시 안에서 계속 변했다.
용산·이태원
미군기지와 가까운 환경에서
햄·소시지·치즈·양배추가 강한 존슨탕 계열
여의도
직장인 상권에서
밥과 라면을 함께 먹기 좋은 점심형 부대찌개
강남·업무지구
쇠고기나 다양한 사리를 더해
조금 더 고급화된 부대찌개
일반 주거지역
가족 외식과 배달이 가능한
대중적인 한 끼 메뉴
서울의 부대찌개는 지역과 상권을 만나 계속 변했다.
등심을 넣기도 하고, 치즈와 다양한 사리를 더하기도 한다.
이제 ‘부대찌개’는 하나의 고정된 레시피라기보다 하나의 음식 장르에 가깝다.
여기서부터 다음 EP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서울에서조차 이렇게 달라졌는데,
평택과 송탄,
동두천,
파주 같은 미군 주둔지역의 부대찌개는 어떻게 다를까.
아직 전국으로 가기 전인데 벌써 계보가 복잡해진다.
족보가 웬만한 종갓집 수준이다.
부대찌개가 전국 음식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재료의 특별함’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초기의 부대찌개에는 역설이 하나 있었다.
햄과 소시지가 귀했기 때문에 특별한 음식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햄과 소시지는 더 이상 특별하지 않게 됐다.
슈퍼마켓에서 쉽게 살 수 있게 됐고,
라면도 일상적인 식품이 됐다.
김치는 원래 어느 집에나 있었다.
이제 미군부대 근처에 살지 않아도 재료를 구할 수 있다.
지역에 묶여 있을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그러자 부대찌개는 오히려 더 멀리 갈 수 있었다.
처음에는 재료가 지역을 만들었고,
나중에는 조리법이 지역을 떠났다.
지역음식이 전국 음식으로 변하는 흥미로운 방식이다.
방송은 이 이동을 훨씬 빠르게 만들었다
EP.05에서 살펴본 것처럼 부대찌개는 방송이 좋아하는 음식이기도 하다.
이유가 있다.
보글보글 끓는다.
빨간 국물 사이로 햄과 소시지가 보인다.
라면을 넣으면 화면이 더 풍성해진다.
누군가 한 숟갈 먹고
“이야.” 하기 좋다.
그리고 이야기도 있다.
한국전쟁, 미군부대, 의정부, 원조식당, 오래된 노포.
화면과 스토리가 모두 되는 음식이다.
「수요미식회」만 봐도 의정부의 오뎅식당과 서울의 희정식당 등을 한 프로그램에서 다루면서 서로 다른 스타일의 부대찌개를 전국 시청자에게 보여줬다.
방송을 본 사람 입장에서는 중요한 변화가 생긴다.
이제 부대찌개는
“의정부에 가야 먹는 음식”이 아니라
“우리 동네에서도 찾아 먹어볼 수 있는 음식”이 된다.
그리고 이후 프랜차이즈가 등장한다. 이 이야기는 다른 에피소드에서 좀 더 심도 있게 다루겠다.
의정붜가 서울 부대찌개를 먹으면 재미있는 점
예전에 회사 동료들과 워크샵 장소 물색차 외근을 나왔다가 의정부까지 들어와 부대찌개를 먹은 적이 있다.
내가 운영하는 식당도 아닌데 괜실히 더 마음이 쓰였다.
모두 맛있고 즐겁게 식사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다음날 들어보니
'어떤 이는 특색이 없다. 어떤 이는 놀부 부대찌개가 더 맛있다' 더라 등 의견이 분분했다.
그럴 수 있다.
원조라는 게 '보다 맛있는, 더 특색있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으니.
맛에 대한 기호는 얼마든 다를 수 있다는!! (마음에 두지 말자!!)
나 역시 의정부에 오기 전에는 서울이나 다른 지역에서 부대찌개를 먹어도 별 생각이 없었다.
그냥 맛있다, 맵다, 햄이 많다, 그 정도였다.
그런데 의정부에서 오래 살다 보니 묘하게 비교를 하게 된다.
김치를 본다.
국물을 본다.
햄의 양보다 햄의 기름기가 국물에 어떻게 섞이는지를 본다.
치즈가 들어가면
“아, 이건 의정부 쪽이랑은 방향이 좀 다르구나.” 싶어진다.
오히려, 서울의 부대찌개를 찾아다니다 보면 오히려 의정부의 특징이 더 잘 보인다.
이태원의 존슨탕을 먹어보면
의정부 부대찌개에서 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다.
여의도의 부대찌개를 보면
이 음식이 얼마나 훌륭한 도시 직장인의 점심이 될 수 있는지 알게 된다.
다양한 서울식 부대찌개를 보면
의정부의 오래된 식당들이 왜 비교적 단순한 재료 구성을 오래 유지하고 있는지도 다시 보인다.
멀리 가봐야 집이 보인다고 했던가.
부대찌개도 비슷하다.
의정부 안에서만 먹을 때는 몰랐던 특징이,
서울에 와서야 조금 선명해진다.
‘서울로 간 부대찌개’를 한눈에 정리하면
| 1960년대 | 의정부 | 미군 식재료 + 김치·고추장 → 지역음식 형성 |
| 1960~70년대 | 용산·이태원 | 미군기지 주변에서 유사 음식문화 성장 |
| 1970년대 이후 | 이태원 | 치즈·양배추 등을 활용한 존슨탕 계열 발전 |
| 1980~90년대 | 여의도 등 업무지구 | 직장인의 점심·회식 메뉴로 일상화 |
| 이후 | 서울 전역 | 지역별·식당별 조리법 다양화 |
| 현재 | 전국 | 프랜차이즈·밀키트·배달까지 확산 |
여기서 중요한 것은 화살표를 너무 단순하게 그리지 않는 것이다.
의정부 → 서울 → 전국
이라는 흐름은 음식의 대중화를 설명하는 데는 유용하지만,
역사적으로는 용산·송탄·동두천 같은 미군 주둔지역에서도 비슷한 음식이 각자의 방식으로 발전했다.
그래서 부대찌개의 역사는 한 줄의 계보보다 여러 갈래의 강이 나중에 합쳐진 모습에 더 가깝다.
다음 이야기
EP.07 전국의 부대찌개는 어디서 갈라졌을까, 의정부에서 시작해 만나는 여러 계보
서울까지 내려왔으니 이제 조금 더 멀리 가보자.
동두천.
송탄과 평택.
파주.
그리고 서울의 존슨탕.
미군기지가 있었던 도시마다 비슷한 햄과 소시지를 만났는데,
희한하게 완성된 음식의 얼굴은 조금씩 다르다.
어떤 곳은 김치가 강하고,
어떤 곳은 햄과 소시지가 강하다.
어떤 곳에는 치즈가 들어가고,
어떤 곳에는 베이크드빈이 빠지면 섭섭하다.
그래서 다음 편의 질문은 이것이다.
“부대찌개에도 류파가 있을까?”
아마 있다.
다만 무협지처럼 의정부파와 송탄파가 식칼 들고 겨룬 적은 없다.
우리가 할 일은 어느 쪽이 정통이라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왜 같은 시대의 재료가 도시마다 다른 맛이 되었는지 찾아보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부대찌개는 생각보다 훨씬 넓은 한국 현대사의 음식이라는 사실을 만나게 될 것 같다.
의정붜 다큐, 오늘의 한 문장
의정부를 떠난 부대찌개는 서울에서 다른 얼굴을 얻었다.
그런데 다른 얼굴을 보고 나니, 오히려 의정부의 맛이 더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