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회사 사장님과 술자리에서 나눈 얘기입니다.
어떤 의사 결정을 필요로 할 때,
특히, 그것이 나 외에 동료나 가족, 회사 조직 등 다수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때,
본인은 스스로에게 세 가지 질문을 한다고 합니다.
'좋은가, 옳은가, 정의로운가'
술자리에서 스치듯 지나는 얘기기도 했고,
직장 생활의 오랜 시간 동안의 제 위치는 Top Management의 의사 결정을 돕는 역할이어서 그런 류의 형이상학적 질문을 스스로 해 볼 만한 시간은 없었던 듯싶습니다.
그러다, 얼마 전 2024년 12월 3일 오후 10시 25분에 대한민국 대통령 '윤석열'이 위헌, 위법적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내란죄를 선동한 사건을 보면서 중대한 의사 결정의 기준이 될 수 있는 '좋은가, 옳은가, 정의로운가'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기준을 숙고해 봄에 있어 윤석열이 참고했을 516 군사정변과 1212 군사반란을 먼저 그 '좋은가, 옳은가, 정의로운가'의 기준으로 평가를 해 보겠습니다. (역사적 사건이므로 후세에 이미 매우 보편적으로 평가하는 기준과 결과를 따랐습니다.)
먼저, 1961년 5.16 군사정변을 일으키고 1972년 10월 17일 유신체제를 위해 계엄령을 선포했던 박정희 대통령의 516 군사정변을 중심으로 분석, 평가해 보고자 합니다.
박정희 정권은 대한민국의 근대화를 위한 엄청난 공적에도 불구하고 유신 독재를 위한 여러 가지 의혹 사건의 빌미를 제공하거나 절대적인 대통령의 권한을 위해 '절대권력·장기집권 보장, 종속적 자본축적의 심화·확대, 사회적·계급적인 통제의 강화, 안보 이데올로기의 강화를 골자로 사회대중운동의 통제와 국민동원체제의 구축을 추진하는 등 초기 사회개혁의 모습은 온 데 간데 없이 보안법·반공법의 강화, 집시법 개정 및 긴급조치의 남발 등을 통해 각종 사회운동과 노동운동을 탄압'을 하게 됩니다.
1961년 5.16 군사정변을 시작으로 1972년 10월 17일 유신 헌법을 위한 계엄령 선포, 1979년 12월 26일 김재규에 의한 피살로 박정희 정권이 마무리되기까지 박정희는 대한민국 역사에 실로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인물이었습니다. 아래 평가는 516 군사정변을 중심으로 박정희의 정권 장악과 유지를 위한 행위에 어떤 정당성이 있었는지 살펴본 것입니다.
1. 5.16 군사정변의 배경
516 군사정변은 1961년 대한민국에서 박정희와 그의 군 세력이 정부를 전복하고 권력을 장악한 사건으로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 정치적 혼란: 1960년 4.19 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고 장면 내각이 들어섰으나, 내각제 운영 경험 부족과 정치적 갈등으로 인해 효율적인 국정 운영이 어려웠습니다.
- 경제적 위기: 한국전쟁 이후 경제 상황은 매우 열악했으며, 실업과 빈곤이 심각했습니다.
- 사회적 불안: 혁명 이후 민주화를 향한 열망이 컸지만, 혼란과 무질서가 이어지면서 국민의 불만이 고조되었습니다.
- 군부 불만: 당시 군 내부에서는 정부의 부패와 무능에 대한 불만이 컸고, 일부 군 지도자들은 이를 국가적 위기 상황으로 인식하여 개입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2. 정변의 이유
- 국가 재건과 혼란 극복: 박정희와 군부는 국가 혼란을 바로잡고 경제 발전과 정치 안정을 이룰 필요성을 명분으로 내세웠습니다.
- 이념적 대결: 냉전 체제 아래에서 공산주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강력한 지도력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 권력욕: 박정희와 그의 세력이 개인적 권력 추구를 위해 이를 실행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3. '좋은가, 옳은가, 정의로운가'의 관점에서 평가
- 좋은가 (Pragmatic Perspective)
[긍정적인 면]- 경제적 발전: 군사정권은 이후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같은 강력한 경제정책을 통해 한국 경제를 발전시키는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 사회 질서 회복: 혼란스러운 사회를 안정화하고 질서를 회복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 민주주의 퇴보: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언론과 개인의 자유를 탄압했으며, 정치적 다양성을 억제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 군사 중심 통치의 폐해: 이후 군사 정권의 연장으로 이어지며 권위주의적 통치가 지속되었습니다.
- 옳은가 (Moral Perspective)
- 군사정변은 합법적 절차를 무시한 비민주적 방식으로 정권을 찬탈한 것이며, 이는 윤리적으로 옳지 않습니다.
- 국가 혼란을 이유로 군이 정치에 개입한 것은 민주주의 원칙에 위배되며, 폭력을 정당화한 사례로 남았습니다.
- 정의로운가 (Justice Perspective)
- 정의롭지 않음: 국민의 선택으로 구성된 민주 정부(장면 내각)를 무너뜨리고 군사력을 이용해 권력을 장악한 것은 정의롭지 않은 행위입니다.
- 필요악으로 볼 여지: 다만 당시의 혼란과 위기를 막기 위한 '필요악'이었다고 주장하는 관점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의는 과정과 수단에서 정당성을 가져야 하며, 이는 516 군사정변에 부족했습니다.
4. 종합적 평가와 결론
5.16 군사정변은 "좋은가"의 측면에서는 경제 발전과 국가 재건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으나, "옳은가"와 "정의로운가" 측면에서는 부정적입니다. 민주적 절차와 원칙을 무시하고 군사력을 통해 정권을 찬탈한 것은 장기적으로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에 악영향을 미쳤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자본주의라는 근대적 경제적 기틀을 만들어 냈다는 긍정적 시섬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정치적인 방식과 과정은 옳거나, 정의롭다는 평가를 하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는 박정희 정권에 이은 두 번째 군부 정권의 시작을 알린 전두환의 1212 군사반란에 대해서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전두환은 박정희 키즈라 불릴 수 있는 인물로 1951년 육군사관학교 11기로 입교했고, 1955년 육사 졸업과 동시에 군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1961년 서울대 학생군사교육단에서 교관으로 근무하던 중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자 육사 생도들을 동원하여 군부 지지 시가행진을 벌였고, 이 일로 인해 박정희 소장의 신임을 얻어 국가재건최고회의의 비서관이 되었습니다.
박정희 정권이 탄생한 이후 노태우 등 육사 동기들과 함께 육군 내 사조직인 하나회를 결성, 박정희 전 대통령의 비호를 받으며 군에서 승승장구하였습니다. 전두환이 하나회라는 사조직을 결정한 것을 우려한 전두환의 상관이 이 위험성을 박정희에게 보고하였으나 박정희는 전두환이 자신보다 야망이 크다는 걸 알면서도 별 것 아닌 것으로 치부해 버렸는데, 아마도 자신의 후계자로 전두환을 이미 눈여겨보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전두환은 1979년 3월에는 국군보안사령관으로 임명되었는데, 같은 해 10.26 사건이 터지자 계엄법에 의거하여 국군보안사령관으로서 합동수사본부장을 맡게 됩니다. 이때 합동수사본부장이라는 직책과 자신이 이끌고 있던 하나회를 위시하여 신군부로 12.12 군사반란을 일으켜 군을 장악하였고, 이듬해 1980년엔 5.17 내란을 일으켜 헌정을 중단시켰습니다. 이후 5.18 민주화 운동을 무력으로 진압, 광주에서 다수의 시민들을 학살하기 됩니다. 그 직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신설하여 국정의 실권을 장악하였습니다.
사실, 박정희와 비교하면 전두환 제 기억이나 역사에 기록될 만한 국가적 업적은 별로 없었던 듯싶습니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과 1986년 아시안게임, 1988년 올림픽 정도일 거 같은데, 이 조차도 1980년 5.18 민주화 운동 후 아물지 않은 상처를 안고 사는 광주 시민들과 젊은이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한 술수로 기획되었기에 여전히 공적으로는 인정받기 어렵지 않나 생각한다. 더군다나 전두환 정권부터 본격적으로 정경 연대와 비자금, 비위 등 온갖 불법적 사건들의 본격화되었으니 전두환은 똑같이 군사 반란을 일으켰음에도 국민적인 성원이나 애정은 받지 못했던 거 같습니다.
아래는 12.12 군사반란 사건의 배경과 이유부터 이 행위의 '좋은가, 옳은가, 정의로운가'의 관점으로 평가한 의견입니다.
1. 12.12 군사반란의 배경
12·12 군사반란은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이 당시 군부의 실권을 장악하고, 이후 정권을 탈취하는 계기가 된 사건입니다. 주요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 박정희의 사망과 정치적 공백: 1979년 10·26 사태로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된 이후, 대한민국은 정치적 공백과 혼란 속에 빠졌습니다.
- 최규하 대통령의 취약한 리더십: 헌법에 따라 최규하가 대통령직을 승계했으나, 그는 군부를 통제할 수 있는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 군 내 권력 다툼: 당시 군부에서는 정승화 육군참모총장과 전두환(보안사령관)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 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었습니다.
- 신군부의 권력욕: 전두환과 그의 동료들은 보안사령부와 계엄사령부의 주요 인사들을 통해 군 내 영향력을 확대하며 권력 장악을 준비했습니다.
2. 반란의 이유
- 정승화 체포: 신군부는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 10·26 사건 수사를 지휘하며 신군부 세력을 압박한다고 판단, 이를 명분으로 군사 행동을 개시했습니다.
- 군부 내 권력 장악: 신군부는 기존 군부 세력을 제거하고 자신들의 세력을 강화하기 위해 12·12 군사반란을 일으켰습니다.
- 정권 탈취를 위한 준비: 군사력을 이용해 권력을 장악한 후, 결국 1980년 5·17 쿠데타와 전두환 정권 수립으로 이어지는 초석을 다졌습니다.
3. '좋은가, 옳은가, 정의로운가'의 관점에서 평가
- 좋은가 (Pragmatic Perspective)
[긍정적인 면]- 단기적 질서 유지: 당시 정치적 혼란 속에서 신군부는 강력한 통치력을 발휘하며 단기적으로 국가 운영의 혼란을 막았다는 주장도 존재합니다.
- 경제적 안정성 유지: 전두환 정권 하에서 경제적 안정과 성장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습니다.
- 민주주의의 후퇴: 군사반란은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발전을 지연시켰습니다.
- 폭력적 정권 장악: 군사력을 동원한 폭력적 권력 장악은 정치적 공정성과 법치를 심각하게 훼손했습니다.
- 옳은가 (Moral Perspective)
- 불법적이고 비도덕적: 합법적 절차를 무시하고 폭력과 음모로 정권을 찬탈한 것은 윤리적으로 옳지 않습니다.
- 국민의 의지 무시: 국민의 선택과 민주주의 원칙을 철저히 무시하고 권력을 사적으로 이용한 행위입니다.
- 정의로운가 (Justice Perspective)
- 정의롭지 않다: 군사력을 이용해 기존 합법적인 군 수뇌부(정승화)를 제거하고 권력을 장악한 것은 정의와 법치를 훼손한 행위입니다.
- 민주주의와 배치: 민주주의는 국민의 의지와 절차적 정당성을 기초로 해야 하지만, 12·12 군사반란은 이를 완전히 배반했습니다.
4. 종합적 평가와 결론
12·12 군사반란은 결과적으로 전두환 세력의 권력 장악과 5·17 쿠데타로 이어졌으며,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법치를 크게 훼손한 사건입니다.
- 좋은가: 일부 경제적 안정과 같은 긍정적 효과가 있었지만, 이는 폭력적 권력 장악이라는 행위 자체를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 옳은가: 불법적이고 비도덕적인 방식으로 권력을 탈취했으며, 도덕적 정당성을 찾기 어렵습니다.
- 정의로운가: 법과 정의의 관점에서도 전혀 정의롭지 않은 행동입니다.
12·12 군사반란은 **‘좋은가, 옳은가, 정의로운가’**라는 기준에서 모두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신군부의 권력욕에 의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법치를 심각하게 훼손한 사건으로 역사적으로 강한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12.12 군사반란을 일으킨 이듬해인 1980년의 5월 17일 24시의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어지러운 시국을 수습한다는 명목으로 전국으로 확대되면서 정당 및 정치활동 금지·국회 폐쇄·국보위 설치 등의 조치를 내리고, 영장 없이 학생·정치인·재야인사 2,699명을 구금하는 등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로 실권을 장악한 하나회는 비상계엄 기간 동안 제5공화국 정권을 창출하면서 인권유린·헌정파괴 행위를 자행하였습니다.
앞선 박정희의 5.16 군사정변 및 10.17 비상계엄과 전두환의 12.12 군사반란 및 5.17 비상계엄을 비교해 보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이긴 하나 그 처음의 의도로만 바라보면 박정희는 최소한 '좋은가'에서는 어느 정도 갑을박론의 여지가 있을 수 있으나 전두환의 모든 행위는 헌정질서와 민주주의를 무너트리는 행위로 밖에는 평가할 수 없어 '정의와 옳고 그름을 논하기 전에, 좋은가에 대한 질문조차 묻기 어렵다 하겠습니다.'
자... 이렇게 장황하게 그 이전의 유사한 역사적 사건을 되짚어 본 이유는...
이번 2024년 12월 3일의 윤석열이 선포한 '비상계엄'에 대한 정당성이 무엇이었는지를 그 이전 사건과 비교해 봤을 때 과연 '좋은가, 옳은가, 정의로운가'의 각 관점에서 우리는 어떤 평가를 내릴 수 있을지를 정리해 보기 위함입니다.
과거 '1) 박정희의 5.16 군사정변과 10.17 유신 체제를 위한 계엄령 선포, 2) 전두환의 12.12 군사반란과 5.17 비상계엄령 선포, 5.18 광주 민주화 운동 학살', 이것과 12.3 윤석열의 비상계엄은 그 의도가 다름이 있을까요? 속속히, 샅샅이 드러나는 윤석열의 속내는 박정희나 전두환가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저는 생각합니다. 혹은 그 의도에 일부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나 자신만이 아니라 수 천만명 국민의 안전과 안위, 안보, 생명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 대통령이란 작가가 생각하는 '좋은가, 옳은가, 정의로운가'의 관점에서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의 국민은' 그 의사 결정에 한 1이라도 고려가 되었을까요?
결과적으로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사건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위헌·위법적 행위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윤 대통령은 내란죄 혐의로 고소·고발되었으며, 검찰은 그를 피의자로 입건할 것이며, 탄액소추안이 발의되었기에 대통령으로서의 어떠한 권한도 누릴 수 없고 단죄만을 기다리는 처지가 됐습니다.
'좋은가, 옳은가, 정의로운가'의 관점에서 평가
- 좋은가 (Pragmatic Perspective)
- 부정적인 면: 비상계엄 선포로 인해 국회 기능이 일시적으로 마비되고,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되었으며, 사회적 혼란과 불안이 증대되었습니다. 이는 국가 운영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습니다.
- 옳은가 (Moral Perspective)
- 부정적인 면: 헌법이 정한 요건을 충족하지 않은 상황에서의 비상계엄 선포는 대통령의 권한 남용이며, 민주주의 원칙과 국민의 신뢰를 저버린 비도덕적 행위로 간주됩니다.
- 정의로운가 (Justice Perspective)
- 부정적인 면: 위헌·위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헌정 질서를 문란하게 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며, 법치주의를 훼손하는 행위로 평가됩니다. 이는 정의로운 사회의 원칙에 반합니다.
종합적 평가
윤석열 대통령의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는 '좋은가, 옳은가, 정의로운가'의 모든 관점에서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권한 남용으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대한 심각한 훼손을 초래하였기 때문입니다.
이글의 초입에 작성한 바와 같이 '좋은가, 옳은가, 정의로운가'의 의사 결정은 나뿐만 아니라, 다수의 타인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어떤 사안을 전제로 합니다. 때문에, 실용적인 측면으로만 고려할 수 없고 도덕적, 윤리적인 상황을 두루 검토해야 할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종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합니다. 이 검토와 고려라는 것을 할 때는 내 지위와 권한보다는 내 책임과 의무를 더 많이 생각해야 하고, 나보다는 나 외의 타인들을 더 많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이 참된 리더의 근본이고, 의사 결정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마다 정치적, 종교적, 철학과 사상적인 견해의 차이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견해의 차이도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을 훼손을 해서는 안됩니다.
이것이 주권을 가진 국민의 대리인인 정치인들의 근본 자세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탄핵의 시간은 이제 시작되었고,
더욱 건강하고 굳건한 대한민국이 되길 희망해 봅니다.

- DeungZan ('24년 12월 1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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