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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와생활/My Story

공허(空虛), 아버지의 시간

by DeungZan 2025. 1. 30.

 

50년 간 개인택시를 하셨던 아버지는 재작년(2023년) 81세의 나이로 은퇴를 하셨다.

같은 연배의 동료분들 중 현역에 계셨던 분은 아버지가 유일하셨기에 아버지의 은퇴는 40여 년 간 유지되던 '서울 관악구 개인택시 가조, 형제 친목회'의 마지막을 의미하기도 했다.

1980년대 대우 로얄 슈퍼살롱

 

아버지와 그 동료분들이 지금의 내 나이보다 훨씬 더 젊었을 시절, 당시에 개인택시로 타기에는 상당한 고가 브랜드였던 '대우의 로얄 슈퍼살롱'의 오너가 되어 차량번호도 1200부터 12xx에 이르기까지 꽤 많은 분들이 한 번에 차량을 바꾸고 '형제 친목회'라는 커뮤니티를 형성하여 정말 형제처럼, 가족처럼 지냈다. 쉬는 날(이틀 일하고, 하루 쉬는)이면 함께 운동하고 명절에는 서로의 부모님께 인사를 하고 여름에는 함께 가족 여행을 떠났다.

 

초등학교 5학년쯤인가... 강원도 옥계 해수욕장으로 여행을 갔는데 약 20여 대의 노란색 로얄 슈퍼살롱의 줄지은 행진은 여행객들에게 상당히 멋스러운 광경이 되었을 것이다. 당시에는 자동차를 갖고 있는 세대도 별로 없었을뿐더러 지금으로 따지만 제네시스 G80 정도의 고급 차량이 줄지어 가는 것은 퍼레이드를 보는 느낌과 다르지 않았을 터이니.

 

세월이 흐르고 한 분, 두 분 유명을 달리하셨다. 이른 나이에 가신 분들도 있고 몇 년 전 세상을 등진 분들도 있다. 아직도 엄마가 '너 누구, 누구 기억나냐'라고 물으시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이름들이 있다.


은퇴를 하시기 몇 년 전부터 아버지의 건강은 좋지 않으셨다. 허리와 무릎이 특히 그랬고 차 밖에 나오시면 걸음을 잘 걷지 못하실 때도 있었다. 어느 때는 머리가 너무 어지럽다고 하시고는 연락이 안 되다가 오랜 시간 주차하고 있는 차량을 이상하게 본 행인의 신고로 아버지를 찾아 병원에 모신 적도 있었다. 아버지 걱정도 되거니와 택시를 운행하시다가 혹시라도 사고를 내실까 더더욱 걱정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몇 번 작은 사고를 내셨고 결국 가족들의 권유와 아버지 스스로의 결정으로 50여 년 간 수십 만 명 손님과 또 그들의 이야기를 싣고 수 백만 km를 달리셨을 운전자의 여정을 마무리하셨다.

 

은퇴를 하시고 한동안은 타시던 차를 그대로 승용차로 바꾸어 어머니와 여기저기 마실을 다니시다 또 몇 번의 작은 사고를 내고는 운전대에서 손을 완전히 놓으셨다.

 

그때부터였다. 새벽 예배를 마치고 돌아오시는 어머니 마중을 가다 계단에서 구르시고, 비 오는 날 언덕에서 넘어지시고, 세탁소를 다녀오시다 앞으로 엎어지시고... 팔이 부러지고, 어깨, 얼굴, 손이 찢기고 많이 그리고 자주 다치셨다. 몇 년간 안 좋던 건강이 수개월, 수 일로 한 번에 소급되어 병환이 되었던 것을 자신도 가족도 눈치채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고질병이었던 뇌신경 건강에는 큰 이슈가 없었는데 경추, 요추 부분의 디스크는 이미 손쓸 수 없을 정도가 되었고 무릎 관절도 악화되었다. 60대부터 허리에 문제를 느껴 시술도 했고 수술도 했는데 문제는 경추 부분이었다. 늘 흉추와 요추만 검사하고 치료를 했는데 목 아래 부분의 요추 신경이 심하게 눌리면서 신체의 밸런스가 깨졌다고 했다. 수술이나 시술을 받기에는 연세가 많다고 해서 지금은 주사를 맞으며 경과를 보고 있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우울증이다.  

 

아버지는 젊었던 시절 운동을 했다. 전문적인 운동선수는 아니었고 동네에서 힘 꽤나 쓰고 싸움 꽤나 하는 그런 청년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키는 그리 크지 않지만 매우 잘 생긴 청년이었다. 의협심이 남달라 동네 불량배들과 소위 17:1로 싸우기도 하고 아버지 방에는 항상 수 명의 친구들이 함께 지낼 정도로 리더십도 있었던 듯싶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박정희 대통령 경호원으로 추천도 받았다고 했다.

 

아버지는 이런 얘기들을 무용담처럼 하는 걸 좋아했다. 오죽하니 우리 집에 놀러 온 내 친구들이나 갓 결혼한 내 와이프에게도 자주 얘기하며 자신의 건강함과 자랑했다. 

 

지금 아버지는 그날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을 비교하고 있는 듯하다. "옛날에는 내가 이랬는데... 지금은 걸음도 못 걷는다."란 얘기를 요즘 만나는 사람들에게 하시곤 죽을 때가 됐다고 자꾸 눈물을 보인다.  

 

어제 설 명절을 보내려 집에 갔다가 아버지의 모습을 힐끗힐끗 쳐다봤다. 공허(空虛) 해 보였다. 손주들이 발치에 있는데도 예전처럼 안으려고 하지도 않고 웃음 지어 보이지도 않는다. 겨우 한술 뜨시고는 침대에 앉아 잠깐 주무시다 일어나서는 애들이 하는 이야기를 무심하게 듣고 계신다. 집에 간다고 하면 좀 더 이따가라 점심 식사 하고 가라고 하시는데 이번에는 그러지 않으셨다.   

 

즐겁지 않고, 기쁘지 않으며, 재밌지 않다.

맛있지 않고, 신나지 않으며, 유쾌하지 않다. 

 

간혹, 반가움 그리움이 어느 정도 그런 감정에 자극이 되지만 그 자극도 쉽게 사그라진다. 어제 내가 느낀 것은 그래서 공허(空虛)함이었다. 우울증이 공허함을 불러온 것인지 공허함으로 우울증에 걸리신 건지 그 선후관계가 중요한 것은 아니나 반드시 그 서로에는 인과관계가 있는 것임은 틀림이 없어 보인다.


아버지의 공허함과 우울증에는 여러 원인이 있을 테다. 첫 번째는 고락을 함께하던 친구, 동료들의 상실이고, 두 번째는 자신의 직업의 상실이며, 마지막 세 번째는 삶의 의미에 대한 상실이다. 첫 번째, 두 번째는 생(生)이란 유한한 시간을 가진 모든 생물이 필연적으로 경험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 세 번째 삶의 의미는 이와 다르다. 삶의 의미라는 건 숨이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가질 수 있는 것이고 본능뿐이 아닌 지성과 이성을 가진 인간만이 품고 가꿔갈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우리는 매 순간 어떤 의미의 과정 속에 있거나 그것이 단절되고 끝에 머무르게 될 때는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고 만다. 그 의미라는 건 '목적, 목표, 방향성, 지향점과 같은 삶의 가치관'이기도 하고 '사랑, 존경, 애착, 애증, 쾌락의 감정'일 수도 있으며, '믿음, 소망, 희망'과 같은 신념일 수도 있다. 또한 누군가의 방귀 뀌는 소리에 웃음, 어떤 정치가의 말도 안 되는 괴변에 대한 분노, 멋진 음악소리에 감탄 등 부지불순 간에 맞닥뜨리는 찰나의 순간에서 어떤 의미를 느끼기도 한다. 나는 그것 모두를 합하여 '행복감(幸福感)'이라 부르고 싶다.  

 

내가 행복감이란 것은 반드시 행복해야지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행복하지 않은 순간에도 행복을 지향하고 또 노력하기에 행복감이라 말하고 싶다.

 

마음이 아팠다. 내 아버지는 지금 공허하고 삶의 의미를 느끼지 못하여 행복하지 않다. 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 이 얼마나 불효인가.. 나는 아버지의 건강과 우울증을 단순히 병리학적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의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며 아버지가 행복감을 되찾을 수 있도록 가족으로서 자식으로서 아들로서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하려 한다.

 

나도 한때 오래 다시던 회사를 나와서는 공허함과 무기력감으로 삶의 무게를 스스로 내려놓으려 한 적이 있었다.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가장의 의무도 하잖게 여겨지고 꿈도 비전도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도 없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나는 늘 목표를 세우고 성취하는 루틴을 살아왔기에 성취에 대한 목적의식과 목표는 그냥 자연스러운 감정과는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목적과 목표가 완전히 상실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자아가 상실되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나의 삶의 의미와 목적, 목표를 새롭게 해 준 것은 결국 나의 가족이었다. 내 아내와 내 아이들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고, 그리고 나에게 얼마나 많은 가능성과 기대를 하고 있는지 듣고 느끼며 이전에는 상상만 했던 내 인생의 목표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게 했다.

 

가족은 그런 것이었고 내 아내와 내 아이들이 내게 사랑한다고 하고 아빠를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했을 때 나는 완전히 깨어날 수 있었다. 그렇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나와 아내, 우리 아이들 그리고 어머니와 내 동생이 아버지에게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가... 그리고, 우리 얼마 후에 여행을 가자거나 아버지가 기대하고 기다릴 수 있을 만한 약속을 한 적이 있었는가.... 혹은 아버지 입장에서 실낱 같은 무엇이라도 우리가 생각해 본 적이 있었는가...

 

가족이 많이 아끼고 또 기다리고 기대한다는 그런 마음이 공허(空虛)한 아버지의 마음을 얼마나 채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설명절 끝자락에서나마 사랑하는 아버지를 위한 어떤 계획과 마음속의 약속이 새겨져 참 감사하다.


문득, 행복감(幸福感)이란 것이 나이와 반비례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릴 때는, 젊을 때는 작은 자극에도 웃음과 즐거움이 많았는데, 나이가 들고는 웃지 못할 일, 즐겁지 않을 순간들을 더 많이 경험하여 행복감을 느끼는 감각이 무뎌졌거나 행복함에 익숙해져 버렸을 수도 있겠다.  

생각해 보면 인생에서 행복이란 의미를 새겨보는 시기가 대부분 인생의 반환점이란 얘기가 헛튼 소리는 아닌 듯싶다.

 

사랑하는 아버지가 공허(空虛)함으로부터 행복함으로 변화되실 수 있도록 우리 가족이 사랑으로 도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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