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여정이 중반쯤 이르렀을 때 나는 어두운 숲 속에서 길을 잃었다는 것을 알았다. 나를 인도해 줄 글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단테의 신곡, 지옥 편'에서)
새벽녁에 일어나 출근(AM 5:30)을 하고 늦은 저녁에 퇴근(PM 8:00)하여 집에 오는 일상이 무료해졌다. 성취감이 덜해졌고, 집에와서 아내가 제대로 식사를 차려놓지 않으면 짜증이났다. 퇴근하여 돌아오는 아빠에게 달려와 안기는 아이들이 귀찮을 때가 있었고,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하고 노래라도 불러주면 속으로 '내가 누구 때문에 이 개고생을 하는데..'하는 생각도 솔직히 가끔들었다.
그때가 내 나이 40대 중반이었다. 대기업에서 경영전략팀을 맡고 있을 때다. 퇴근 후에 후배들과 술자리가 잦았다. 그날 그날의 스트레스를 술로라도 풀어야했다. 누군가 힘내세요 라고 얘기해도 힘이나지도 않았고, 힘을 내고 싶지도 않았다. 어느 날 아내와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가는 길에서 내비게이션 안내가 나오는데도 온통 생각은 딴데 가 있어서 경로를 이탈하길 여러번.., 집에서도 밥을 먹다말고 엉뚱한 곳을 한 참을 응시하며 넋이 나가 숟가락의 국물을 뚝뚝 흘리곤 했다. 번아웃이란 게 온거다. 회사 상사나 다른 팀장들과의 갈등도 한 몫은 했을테다.
그즈음 중년의 첫퇴사를 했다. 13년 간 다녔던 회사의 퇴사였다.
좀 생소하긴 했다. 젊었을 때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야근을 하고, 밤을 세고.. 내 직업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했고 무엇보다 내 일이 너무나 재미있었다. 심지어 일요일 저녁이 되면 다음 날 출근해서 해야할 일에 대한 설레임으로 잠이 안 올 정도였다. 덕분에 점점 좋은 회사로 이직을 하고 또 남들보다 빨리 진급도 했다. 이런 내가 일에 대한 의미를 잃고 무기력에 빠져버리다니.
몇 달간의 백수 생활로 생활비는 고갈이 되어가고 어떤 일이든 다시 해야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무기력했고, 어떤 일도 하고 싶지 않았다. 의욕이 생기지 않았고 반짝였던 눈도 동태 눈깔마냥 총기도 생기도 없었다. 받던 연봉의 3분의 1을 반납하고 나서야 새로운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시간 동안에도 나는 어떤 회사의 대표이사를 하기도 했고, 어떤 회사의 임원을 하기도 했으며, 어떤 회사에서는 30여명의 직원들을 관리하면서 신사업 기획을 하는 역할을 맡기도 했다. 그 시간이 약 6년이었다.
그런데, 이 6년 간의 시간이 어땠냐면, 늘 열심히 하는 것 처럼 보였을테다. 남들 눈에는. 물론, 그건 거짓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 다운 상태로 늘 열정과 자신감이 넘치던 내 모습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허송세월을 보낸 건 아니었다. 그때 그때 일에서 배운 것도 그리고, 사람으로부터 배운 것도 많이 있었다.
2024년 8월 27일, '멈춰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진짜였다. 내가 자부심을 갖고, 주말에 조차 이 일이 너무나 좋아서 월요일을 기다렸던 그 일 그리고, 이보다 훨씬 큰 회사에서 조차 '넘버 ONE'으로 인정받았던 그 일에 대해 내 상급자(그 회사의 오너)로부터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내가 기획자 같지 않다는 얘기였다.
그 날, 그 시간. 나는 내 마음 속으로 급 브레이크를 걸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이 쌩 또라이 같은 게 기획이 뭔지도 모르는 무지렁이 주제에..!!!' 라는 생각도 했다. 그리고, 들어가서 한바탕 시원하게 그 일이, 그 사업이 안될 얘기를 적나라하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은 속여도 나는 나를 속이지 못한다. 나의 무기력함이, 나의 의심과 불신이 너무나 컸다. 예전에는 어떤 어려운 일, 힘든 일도 내가 맡으면 다 해결된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리고, 실제 그렇게 했다. 그래서, 누구보다 자심감이 넘쳤고, 그 성취의 자신감이 내 열정을 불어넣는 선순환이 되었다. 그런데, 2018년 12월 31일로 꺼진 그 열정과 자신감은 '무기력증, 의심, 불신, 무감각, 무흥미'로 바뀌어 2024년에 이르기까지 나를 '거짓 나'로 살게 했다.
깨우침은 인생의 가장 어두운 시기에 찾아온다.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가'에서)
다시, 멈춰섰다.
그리고, 무엇이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다르게 했으며, 내가 가졌던 열정과 자신감은 어디서부터 나왔고, 시작됐는지 그리고 다시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하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어느새 고 3, 초 6이 되어있는 내 아이들에게 시선이 멈췄다. 아이들과 아내만 생각하면 늘 '행복'이란 단어가 먼저 떠올랐다. 그리고, 무한한 따뜻함과 포근함이 느껴졌고, 이들을 위한 헌신에서 내가 행복감을 느낀다는 것이 새삼 떠올랐다. 늘 가깝게 있고, 늘 위안이 되어주는 존재들...
그러다가, 내 가족처럼 소중히 여기는 내 책장에 시선이 머물렀고 수십 년간 모아놨던 내 기획서들, 스크랩한 자료들, 수 많은 책들과 그 책들 사이에 껴있는 포스트잇과 플래그들. 그것들을 하나 하나 되짚어 읽어보았다. '행복'이 묻어나왔다. 내 열정과 즐거움이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놀라웠다. '이때 이런 생각을 어떻게 했지? 나 정말 대단한데?', '장표의 구성도 훌륭하고, 짜임새도 좋은 기획서네. 와 정말 좋은 기획이다!', '이 기획서의 양식와 구성은 지금도 그 회사에서 여전히 쓰고 있는데, 그 양식을 만는 사람이 나란 걸 그들이 알고 있을까?' 등등 파노라마 사진 처럼 전개되는 추억 속에서 열정 뿜뿜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많은 사람들 앞에서 프리젠테이션 하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그건, '행복한 내 모습'이었다.
나는 언제 '행복이란 걸 생각해 봤을지' 생각해 보았다. 흥미로운 것은 '행복이란 게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이란 건 누구나 무인하지 못할텐데, 젊고 나이가 어릴 수록 이 '행복'이란 단어에 대단히 무감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들판에 핀 꽃에 관심이 든다면, 당신은 이제 아저씨, 아줌마다.'라고 농담하 듯이 '행복'이라는 과정 혹은 상태에 대한 것도 거의 무의식 상태에서 느낄 뿐, 명시적으로 목표나 목적을 둔다라고는 잘 얘기하지 않는 듯 하다.
그래서, 멈춰선 채 내가 바라보고 탐구해야 할 것을 나는 '행복'이라고 정했다.
행복을 탐구하기로 한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이다. 첫번째는 IT 기획 전문가로서 열정과 자신감 가득했던 초심의 나로 돌아가기 위함이고, 두번째는 행복 그 자체에 대한 탐구와 연구를 하고 싶어서다.
인류 역사에 대한 탐구서인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Sapience)'의 마지막 챕터에서 다루는 것 역시 '행복'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설명하는 행복은 우리가 흔히 예상하는 '행복의 방법, 조건 등'이 아니다.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이라는 3대 혁명의 가운데 인간의 삶의 질을 놀랍도록 발전하였다. 그런데, '그 삶의 질 향상이 반드시 행복으로 이어지는가? 혹은 어떤 문명의 발전으로 다른 문명이 멸절되었을 때, 이때 사피엔스는 행복을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가' 라는 꽤나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 '행복의 전제, 요소, 과정, 결과'에 이르는 여러 학문과 지식을 탐구하고자 하며 우선은 내 주변의 이야기와 여러 서적을 통해서 만날 수 있는 행복에 대해서 재밌게 탐구해 보고자 한다.
나는 지금 잠시 멈춰있다.
그리고, 너무나도 감사하게 이 멈춤의 순간에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알지 못했던 새로운 것을 만나고 배우고 있다.
푸르고, 꽃 같았던 우리가 중년이 되었다.
그 시절 시리도록 아름다웠던 우리가 중년이 되었다.
중년의 멈춰 섬은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이고,
우리는 '행복을 탐구하는 영원한 청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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