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졸업하여 사회 생활에 나서게 되면 우리는 대개 두가지 타이틀을 갖는다. 첫번째가 직업이고, 두번째는 직무이다. 직무는 직무 자체만으로는 잘 언급되지 않고 대부분 어느 회사 어떤 부서의 아무개(직급 포함)로서 불려지게 된다. 회사의 규모가 크면 클 수록 직무는 좁고 잘게 쪼개져서 내가 하는 일이 매우 선명하게 드러나는 반면 다양한 일을 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다. 예를 들어 디지털 마케팅을 한다고 하면 온드(Owned), 언드(Earned), 페이드(Paid) 미디어 중 한 가지만을 선택해야 할 수도 있고 심지어 온드(Owned) 미디어 중 유튜브 채널만 운영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직업은 마케팅이고 직무는 유튜브 채널 운영자다.
반대로 회사의 규모가 작으면 작을 수록 직무가 너무나 광범위 해 진다. 사실 직무라는 게 거의 의미가 없을 정도가 되는데 마케팅을 전공하여 입사를 했음에도 영업을 시키거나 공공 정책과제 담당, 심지어 인사, 총무 역할까지 상급 관리자가 시키는 일은 다 할 수 밖에 없다. 이런 경우 직업은 마케팅인데 직무는 OOO 회사 일이다.
직업, 직무가 언듯 비슷해 보이긴 해도 한자나 영어로 풀이를 해 보면 확연하게 다른 뜻 임을 알 수 있다.
직업(職業)
- 한자: 직(職) 맡은 바 일 / 업(業) 생계를 위한 활동 >> 생계를 위해 활동으로써 맡은 일
- 영어: Profession / Occupation / Job / Career >> 전문적인 직업, 종사하는 일, 장기간에 걸친 직업적 경력이나 경로
직무(職務)
- 한자: 직(職) 맡은 바 일 / 무(務) 임무 >> 남으로부터 맡겨진 일
- 영어: Duty / Responsibility / Task / Role >> 특정 직위에서 맡은 의무나 책임, 수행해야 할 업무나 과제
직업은 생계를 유지하거나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개인'이 맡은 일을 의미하고, 직무는 '특정 직책이나 직위'에서 수행해야 하는 구체적인 업무나 책임을 의미한다. 그래서, 오롯히 나를 표현할 때는 직업을 얘기하고 회사에 속한 역할과 지위를 얘기할 때는 직무를 얘기하곤 한다.
어느 날 저녁, 마트에서 산 싸구려 와인을 한 잔 하다가 불연듯 '와인병과 와인의 병'이 '직업과 직무'의 차이와 언듯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와인병으로 살았는지 와인의 병으로 살았는지 생각해 봤다. 둘이 다 같은 거 아니냐고 할 지 모르지만 와인병은 그 자체로 하나의 가치로서 인정받는 것이고, 와인의 병은 그 안에 내용물(와인)이 없으면 분리수거를 당하는 빈껍데기일 뿐이다.
우리는 고등학교나 대학에 진학하면서 대개 어느 정도 직업의 바운더리를 선택하게 된다. 그러나, 정작 회사에 입사를 하게 되면 직업보다는 직무에 더욱 집중할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이공계열의 엔지니어보다 화이트 컬러라고 하는 직군에서 이런 현상을 더욱 두드러진다. 옛 어른들이 '그 딴 거 배워서 뭐하냐, 기술을 배워야지!'에서 그 그 딴 게 대부분 화이트 컬러들이 하는 일이다. 나도 '전략기획'을 업(業)으로 하는 그 화이트 컬러다.
회사에서 직무를 수행할 때는 꽤 근사하다. 새하얀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메고 몸에 딱 핏하는 슈트를 입고 거울 속에 내 모습을 보면 그렇게 괜찮아 보일 수가 없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프리젠테이션을 하고 수 십명의 구성원을 관리하는 관리자로서의 내 모습도 멋있어 보일 때가 있었다. 회사 명함을 주면 '아~ OOO에 OOO님 이시군요. 반갑습니다!' 하고는 우리회사에 대해 아는 체를 하고 내 이름을 들어본 적 있다는 거짓말을 한다. 거짓말 인 것을 알면서도 괜실히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후배들이 보고를 할 때나 업무의 성과가 더뎌 조언을 구하면 난 체, 젠 체 다 하며 "우리 회사는 말이지. 네가 우리 회사나 업계에 대해서 잘 모르나 본다..." 라며, 회사의 역사와 대표이사의 성향, 업계 상황들에 대해서 장황하게 '나 때는 말이지'를 곁드려서 일장 연설을 한다. 후배들이 존경하는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다고 착각한다. 그러다 어느 날, 버릇없어 보이는 후배 직원이 우리 '직업'과 관련한 전문성을 토대로 매우 날카롭고 섬세한 기획안을 드밀며 나와 언쟁을 하려 할 때 등골이 서늘해 질 때가 있었다. '이런 버릇 없는 놈을 봤나!' 하고는 적어도 '직업'에 대해서는 '이 녀석이 나보다 낫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언젠가는 이 녀석이 내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막연한 경계심 같은 것이 생긴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면 당신도 40 ~ 50대 일 것이다. 40 ~ 50대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그보다 젊은 나이의 화이트 컬러라면 곧 닥칠 미래일테니까.
우리는 직업을 선택했지만 우리를 선택한 회사는 직무로서 나와 당신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리고, 실무 담당이 아닌 관리자로서 성장하면 우리는 보다 많은 직무를 맡게 될 터이고, 그러면서 직업의 전문가에서 회사의 전문가로 변해 갈 것이다. 그러다 어떤 일로 오랜 시간 다녔던 회사를 퇴사하고 새로운 회사로 이직하게 되면(이직이라도 할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그 회사에 '적응'하기란 정말 어렵게 된다.
언듯보면 이상하지 않은가? 수 년, 수십 년 그 직업으로 월급받아 살았는데도 새로운 회사에서의 '적응'이란 게 필요할까? 이런 시선이 바로 나를 새롭게 채용한 그 회사의 대표 또는 상위 관리자의 시선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최소 6개월에서 1년 정도의 적응 기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직업을 직무로서 전환해야 하기 때문이다. 산업이 다를 수 있고, 시장과 경쟁사가 다를 수 있으며, 고객이 다를 수 있고, 회사의 핵심 기술과 추구하는 가치, 비전이 다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직업과 직무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적응'에 대한 관점이 다를 수 밖에 없다.
어쨌든, 고맙게도 회사가 당신의 '적응'을 기다려줬다고 해보자. 그런데, 성과는 어떠한가? 적응과 성과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 성과는 관리 능력만이 아니라 실무 즉, '직업'에 대한 전문성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물론, 소위 영원까지 갈아넣도록 담당자를 닥달하여 성과를 얻는 리더들도 경우엔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만 단기적인 방법이고 지속성을 기대할 수는 없다.
난 이렇게 살았던 것 같다. 이렇게 살면서 이런 저런 경험을 했다.
그리고, 또다른 퇴사를 했다.
'나는 와인병인가 와인의 병인가..' 란 생각을 한다.
직무의 타이틀이 아닌 오롯히 개인인 나로서 나는 어떤 타이틀, 브랜드를 갖고 있을까? 나는 지금 어떤 능력과 역량을 갖고 있으며 그 경쟁력은 어떠하고, 새롭게 갈고 닦아야 하는 기술은 무얼까? 자기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이런 고민과 함께 말이다.
40 ~ 50대 퇴직자들을 위한 몇 가지 통계가 있다.
- 한국노동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40 ~ 50대 퇴직자의 재취업까지 소요되는 기간은 평균 15.6개월
- 재취업해서 일하는 기간은 평균 1년 6개월 정도, 2~3번의 재취업을 반복하면서 일자리 질과 임금 수준 낮아짐
- 재취업에 성공한 이들의 주요 요인으로는 '눈높이 낮추기'(22.5%)와 '자격증 취득'(13.9%)
- 재취업의 기회
- 이전 경력과 유사한 분야: 중소기업, 스타트업, 컨설팅, 강사/교육
- 새로운 분야로의 도전: 자영업, 귀농/귀촌, 사업적 기업/비영리 단체
- 경제 상황에 따른 선택: 단기 계약직/파트 타임, 보안/경비
화이트 컬러 출신 40 ~ 50대의 재취업은 쉽지 않을 뿐더러 대부분 임금과 직위가 낮아지는 경향이 많다라고 한다. 그런데,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100세 시대, 저출산/고령화 시대 아닌가? 우리의 40 ~ 50대는 베이비 부머의 그 때와는 다르다. 통계는 어디까지는 통계이고 과거의 데이터일 뿐이다.
그리고, 어쩌면 생성형 인공지능과 같은 신기술의 급속한 저변확대는 우리 세대에게 새로운 기회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왜냐면, 배우기 쉽다. IT 분야에서 신기술, 신사업 전략기획을 26년 간 해 오고 있지만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세상을 혁신하고 변화시킨 기술들은 모두 쉬웠다. '인터넷이 그러했고, 스마트폰이 그러했다'. 이 쉬운 '도구'는 우리를 디지털이라는 문명으로 이끌어 줄 매개체가 될 것이고, 디지털 문명에는 현실 세계와는 다른 새로운 경제 체계가 만들어 지고 있다. 거기에 새로운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새로운 기회의 땅에는 나이, 성별, 국가의 경계가 없으며 굳이 나를 들어내지 않아도 되는 익명, 가명의 아이덴티티가 가능하다.
우리는 '와인의 병'으로 오랜시간 우리의 회사와 함께 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와인의 병이 아닌 와인병으로서 자기주도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샤또 무똥 로칠드'라는 와인이 있다.
전세계 와인 애호가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최고의 와인이다.
이 와인을 더욱 특별하게 해 주는 것이 있는데, 바로 와인병이다.
이 와인병의 라벨 디자인에는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프란시스 베이컨, 데이비드 호크니 등 세계적인 예술가들이 참여했으며, 그 와인병 자체만으로도 소장의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안의 내용물이 없어도 그 자체로서 가치가 있는 '샤또 무똥 로칠드의 와인병' 처럼
어느 회사의 어떤 직무의 누가 아니어도 스스로의 가치로 우리 삶을 더욱 빛나게 할 우리가 되길 소망해 본다.
"우리의 삶은 그 어떤 와인보다 감미롭고 아름다운 얘기가 스며있다"
- DeungZan ('25년 1월 1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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